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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리티법, 왜 죽었나: 600페이지 협상이 단 한 표 차 앞에서 무너진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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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리티법, 왜 죽었나: 600페이지 협상이 단 한 표 차 앞에서 무너진 밤

워싱턴에서 벌어진 정치 드라마입니다. 미국 상원이 가상자산 시장구조법, 이른바 클래리티법을 본회의에 올릴지 말지 정하는 절차표결을 했는데요, 결과가 찬성 49표, 반대 50표. 통과에 필요한 문턱은 60표였습니다. 60표는커녕 과반도 못 넘겼어요. 양당 협상팀이 600페이지가 넘는 타협안을 만들어놓고도, 고위공직자의 가상자산 사업 연결을 제한하는 윤리조항 몇 줄에서 끝내 갈라섰습니다. 업계 최대 후원자인 루미스 의원은 표결 전부터 이렇게 말했죠. "끝난 겁니다."

블랙번 의원의 진단은 간단합니다. 민주당이 1년 넘게 같이 법안을 빚어놓고 정작 자기들이 만든 결과물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유는 트럼프에게 승리 트로피를 넘기기 싫어서다. 반대편 이야기도 들어보죠. 알소브룩스 의원은 법안이 죽은 게 아니라며, 대통령 윤리조항 다툼이 정리되기도 전에 공화당이 표결을 강행했다고 맞받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반대표 50표 안에 공화당 네 명이 섞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홀리, 모랜, 틸리스 같은 이름들이죠. 순수한 당파 싸움만은 아니었다는 뜻이에요.

경제학 렌즈로 보면 이건 아주 교과서적인 장면입니다. 법이란 건 결국 여러 사람이 각자 자기 이익을 계산해서 만드는 물건이에요. 공동의 이익이 100이어도, 개인의 정치적 손익이 마이너스면 표는 안 나옵니다. 11월 중간선거가 코앞인데, 상대 진영에 "업계 숙원을 해결해준 사람"이라는 훈장을 달아주는 건 각 의원 입장에서 손해거든요. 법안의 품질이 아니라 공로의 배분이 변수가 되는 순간, 법안은 인질이 됩니다.

시장은 즉시 값을 매겼습니다. 비트코인은 한때 5.3퍼센트 빠진 7만4910달러까지 밀리며 6월 이후 가장 큰 장중 낙폭을 기록했고, 이더리움은 8퍼센트 넘게 떨어졌습니다. 국내 거래소 기준으로는 1억300만원대였죠. 다만 이 하락을 법안 탓으로만 돌리면 곤란합니다. 국채금리와 국제유가 부담, 그리고 대규모 레버리지 청산이 함께 겹친 복합 낙폭이었어요.

그럼 법이 없으면 뭐가 나쁠까요. 핵심은 영속성입니다. 규제기관이 만든 규정은 다음 행정부가 뒤집을 수 있지만 법률은 그렇지 않습니다. 업계가 몇 년을 매달린 이유가 바로 그 지속성이었죠. 규칙이 4년마다 뒤집힐 수 있다는 건, 기업 입장에서 미래 현금흐름을 할인할 때 정치 위험 프리미엄을 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할인율이 오르면 기업가치는 떨어지고, 장기 자본은 발길을 돌려요. 유럽처럼 규칙집이 이미 정리된 곳으로 투자와 개발자가 이동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위기라기보다 놓친 기회, 이 표현이 딱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감독당국은 멈추지 않았어요. 증권당국은 스타트업이 등록 없이 7500만 달러어치까지 토큰을 팔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제안했고, 파생상품당국은 미국 최초의 비트코인 무기한 선물을 승인했습니다. 입법은 멈췄지만 제도는 움직인 겁니다.

그리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이번 사건은 사토시의 설계를 깎아내린 게 아니라 오히려 증명했어요. 어느 자산이 특정 국가 의회의 표 계산에 목숨을 걸고 있다면, 그건 이미 "허가가 필요한 자산"입니다. 비트코인의 프로토콜은 이 소동 내내 10분에 한 번씩 묵묵히 블록을 쌓았습니다. 상원이 49대 50으로 갈라지든 말든 발행 스케줄은 코드대로 굴러갔어요. 가격은 정치에 흔들려도 규칙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이게 정치 리스크를 피하는 가치 저장소의 정의 그 자체 아니겠습니까.

정치가 진보의 앞을 가로막는 일은 인류사만큼 오래됐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진흙탕 바깥에 사는 자산이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같이 드러났을 뿐입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특정 자산의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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